INTERVIEW with 서도호
Q. 산정 서세옥 화백의 작품에서 출발해 두 아들이 공간을 완성한 이번 프로젝트의 전체적인 과정에 대해 듣고 싶다.
A. 우리 형제는 아버님이 작업하시는 모습을 보며 성장했다. 전시 준비를 위해 불철주야 작업에 매진하실 때는 온 가족이 도와드리곤 했다. 어려서 먹을 갈아드리는 일부터 시작해 성인이 된 후에는 작업 모습 촬영, 다큐멘터리 제작, 전시 기획 및 도록 출판 등을 도왔다. 자연스럽게 아버님의 작업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고, 누구보다 작품 세계를 더 잘 이해할 기회가 주어진 셈이기도 했다.
생전에 당신 스스로 작업과 세계관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언젠가는 내가 목도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 심오한 작품 세계와 철학을 세상에 소개하고픈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던 차에 LG전자의 소중한 제안으로 이번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번 신작은 어떤 하나의 모티브에서 단선적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매우 많은 요소를 동시에 고려하며 방향을 잡고, 구상하는 비선형적인 과정을 거쳤다.
Q.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보여줄 서세옥 화백의 작품 7점을 선정한 기준이 궁금하다. 전통 회화와 새로운 디지털 영상, 그것을 담는 전체 공간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나?
A. 아버님은 생전에 수천 점의 작품을 남기셨다. 그중에서도 특히 인간의 추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의 작품이 중요하다는 사실에 평소 아버님과 우리 가족 모두 공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국내에 실물이 소개된 경우가 드물었던 관계로 이번에 당시 제작된 주요 작품을 선별해 재해석하고 관객들과 나누고자 했다.
동생과의 협업은 여러 요소를 동시에 고려하면서 진행하는 유기적이고 직관적인 프로세스였다. 전시 구성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조금씩 조율해나가는 방식이었다. 형제 간에 말없이 통하는 부분이 많았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우리가 세운 원칙은 LG전자의 투명 OLED TV의 특성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산정 서세옥의 작품 세계를 지금까지 경험해본 적 없는 방식으로 재해석하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작품들의 제작 장면을 우리가 실제로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의 모습을 추상화한 소품을 중심으로 디지털 영상(애니메이션) 시리즈를 만들었다. 각각의 짧은 애니메이션은 아버님께서 한 획 한 획 기운을 쏟아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으시던 광경을 기억하면서 화폭에 인간의 형상이 만들어지던 과정을 시각화한 것이다.
‘기운생동’은 동양화론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개념이자 아버님께서 항상 강조하시던 부분이다. 아버님이 그림을 그리던 모습은 일종의 행위예술이나 기공에 가까운 움직임의 연속이었고, 그림은 그 움직임의 결과물이자 궤적과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아버님이 그리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 우리의 경험을 토대로 그림에 ‘동세’를 넣어 관객들도 서세옥의 작품세계를 또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기를 기대했다.
전시장 입구에서는 먼저 2007년 도쿄 메종 에르메스에서 선보였던 장소 특정적 대형 회화를 재현한 천 설치물을 만나게 된다. 이 작품을 통해 아버님 그림의 투명성과 공간성을 아날로그적 또는 물리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그다음 LG전자의 투명 OLED TV로는 시간성과 기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레이어의 중첩은 그림이 그려지는 과정에 대한 직관적인 경험일 뿐 아니라 서세옥의 그림이 정지된 것이 아닌 ‘시간성’을 내재하고 있음을 드러내고자 하는 우리의 바람을 보여준다. 즉, 우리 형제가 바라보고 이해하는 서세옥의 그림은 살아 움직이는 그림, 처음부터 ‘기운생동’이 담긴 그림인 것이다. 그것을 풀어내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큰 목적이다.
Q. 아버지의 작품을 새롭게 해석하고 상상하는 이번 작업 과정에서 다시금 발견한 서세옥 화백 작업의 매력, 나아가 회화의 매력이 있다면?
A. 신작을 위해 아버님의 수많은 작품을 꼼꼼히 검토한 것은 물론 오랜 시간을 들여 아버님의 모습을 촬영한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고, 어록을 다시 읽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가 아버님을 옆에서 뵈며 경험했던 옛 시간을 돌이켜보며 종합해서 내린 결론은 화가 서세옥은 다시 나오기 힘든 천재였다는 사실이다. 아버님은 현대를 살아가는 동안 시서화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감히 넘볼 수 없는 높은 정신세계를 유지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셨다. 이러한 삶의 자세에서 나온 당신의 예술 세계는 감상만으로는 도저히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오한 세계였으며, 그 철학적, 정신적 세계를 단순한 선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아버님의 작품 세계가 지닌 또 다른 매력을 느끼기도 했다. 1970년대에 ‘인간’ 시리즈가 처음 발표되었을 때도 획기적이고 혁신적인 이미지로 다가왔지만, 50년이 지난 지금 같은 그림을 보아도 새롭고 혁신적으로 다가오면서 동시대성을 확보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의 이번 작업은 아버님의 작품 세계를 새롭게 해석했다기보다는 양파처럼 겹겹이 싸인 수많은 의미의 레이어 중 몇 개를 벗겨보려는 시도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Q. 평소 패브릭이라는 섬세한 재료를 주로 사용해 거대한 설치 작업을 하는 작가에게 LG OLED는 어떤 재료 혹은 새로운 가능성으로 다가왔나?
A. 일단 LG OLED가 ‘투명한’ 디스플레이라는 점이 신선했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이미지는 불투명한 소재 위에 그려졌다. 특히 서양화의 경우, 그림은 불투명한 화폭 위에 두꺼운 유화물감으로 그려진 상상의 세계로 우리를 이끄는 ‘창’의 역할을 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종이, 캔버스, 물감 등 그림을 구성하는 존재론적 조건들을 직시하지 못한 채 이미지가 만들어낸 ‘허상 (illusion)’에 빠져들게 한 것이다.
그런데 수묵화는 처음부터 이미지를 보는 관점이 서양화와 달랐던 것 같다. 먹이 잘 흡수되는 재질의 종이에 그림을 그리는 수묵화는 이미지가 표면에만 존재하는 서양화와 달리 종이 속으로 스며들어 형성된다. 아버님도 수묵화의 무한한 우주와 공간을 자주 언급하셨는데, LG OLED의 스크린이 투명해지는 순간을 경험해보니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적 공간감이 생기는 것 같았다. 수천 년 동안 볼 수 없었던 그림 뒤쪽의 공간을 볼 수 있게 된 듯한 느낌이랄까. 그동안 내가 즐겨 사용하던 반투명의 천 역시 LG OLED의 투명성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느껴졌고, 그 결과 ‘투명성’을 화두로 규정하고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Q. 프리즈 서울 2024의 LG OLED 라운지를 방문하는 관객들과 작품을 통해 어떤 교감을 나누고 싶나?
A. 우리 삼부자는 각자 강한 개성의 소유자이지만, 공통된 미감과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 등으로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이번 프로젝트는 아버님의 작품을 매개로 동생과 협업하면서 그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번 전시는 화가 서세옥을 생전에 가까이서 뵐 수 있었던 우리의 특별한 경험을 세상과 나누기 위해 마련했다. 이 자리를 통해 관객들이 아버님의 작품 세계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도록 큰 노력을 기울였다.
Q. 현재를 사는 우리는 예술을 통해 도래하지 않은 미래를 가늠하고자 한다. 예술가에게 테크놀로지는 어떤 의미로 작동하며, 기술과 예술을 통해 과거와 현재는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A. 최근 팬데믹을 경험하고 AI가 실용화 단계에 들어가면서, 중력의 지배를 받는 3차원 세계에 기반해 장소성과 인간 신체의 공간 경험을 바탕으로 한 내 작업이 미래에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테크놀로지가 고도로 발달해서 현실과 구분이 불가능할 정도의 가상현실 기술이 도래한다면 장소에 제약을 받는 모든 형태의 예술이 재고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싶지만, 비관적으로만 보지는 않는다. 카메라, 컴퓨터, 인터넷 등의 발명이 인간 문명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지만 그럼에도 일상에 자리를 잡았듯이 어떠한 신기술도 결국 큰 거부감 없이 수용되지 않을까 싶다.
내 작업에는 ‘기억’에 관련된 사색이 큰 꼭지인지라 현재 시점에서 사라지려는 과거를 되새김질하면서 기억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이 많이 들어간다. 기억을 놓지 않으려는 것은 과거를 바탕으로 미래를 전제로 한 행위인데, 기술의 도움이 점점 더 필요해진다고 느낀다. 나는 전통적인 미술교육을 받은 사람이지만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항상 새로운 재료와 기술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 상대적으로 잘 알려진 ‘천’을 이용한 설치 작품에 비해 대중에게 보여드릴 기회가 적었기에 생소할 수 있겠지만, 오래전부터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작업도 많이 해왔고 아이디어를 효과적으로 실현할 기술을 항상 찾고 있다. 실제로 현재 런던 스튜디오에는 내가 내린 간단한 지시를 듣고 스스로 작품을 만드는 로봇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INTERVIEW with 서을호
Q. 아버지이자 예술가인 서세옥 화백의 작업에서 출발해 형제가 협업하는 이번 프로젝트가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
A. 서도호 작가와는 2010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2012년 광주 비엔날레 등 여러 프로젝트에 걸쳐 형제 관계를 넘어 설치 미술가와 건축가로서 컬래버레이션을 이어가고 있다. 그동안 함께 일하면서 쌓인 신뢰와 대화를 바탕으로 일반적인 협업 이상의 좋은 창작 과정을 공유하고 있다. 특히 두 아들이 아버님의 작품을 재해석하는 기회가 된 이번 프로젝트는 좀 더 특별했다. 우리는 아버님 작품과 더불어 숨 쉬며 자랐기에 서로의 눈빛만으로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이해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Q. 건축가 서을호와 미술가 서도호, 두 사람은 각자 어떤 역할에 중점을 두고 준비에 임했나?
A. 서도호 작가와 나는 단순히 예술적 교감만을 나누는 사이가 아니다. 우리는 삶에서 지키며 살아야 하는 기본적인 것들에 대한 기준과 생각이 비슷하다. 평소 나누는 일상적인 대화가 창작과 관련된 프로젝트에서도 근본적인 것을 존중하며 부딪힘 없이 진행할 수 있게 해준다. 서도호 작가의 명확한 영상 전시 콘셉트를 이해하고 공유하며, 아버님의 작품을 두 아들이 재해석하는 의미의 공간을 디자인하고자 하였다.
Q. 이번 프로젝트에서 LG OLED라는 디지털 화폭이 어떤 영감의 물꼬를 터주었나?
A. LG전자의 투명 OLED TV는 백라이트 없이 ‘투명 모드’와 ‘블랙 스크린 모드’가 가능해 투명한 화면 뒤에 펼쳐지는 세계와 블랙 스크린이 올라오면서 생기는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디지털 제품이다.
이러한 입체적인 특징을 활용해 아버님의 작품 세계를 아들들의 새로운 상상력으로 바라보는 중첩된 시각을 보여주려 했다. 그런 면에서 탁월한 디지털 화폭이라는 생각으로 이번 전시를 준비할 수 있었다.
Q. 영상 설치 및 공간 구현을 통해 발견한 LG OLED만의 매력이 있다면?
A. 투명한 화면이 자극하는 새로운 상상과 해석의 여지인 것 같다. 우리가 이번에 시도한 프로젝트에는 아버님의 작품을 새롭게 바라보는 두 아들의 상상력을 담고자 했다. LG전자의 투명 OLED TV에 담긴 영상 작업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또 다른 상상과 해석을 만들어줄 것이라고 짐작한다.
Q. 프리즈 서울 2024 LG OLED 라운지에서는 회화, 설치, 영상 테크놀로지가 한자리에 어우러진다. 여러 층위의 작품이 담길 공간에서 표현하려는 주요 건축 포인트는 무엇인가?
A. 이번 전시에서는 여러 레이어를 직관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공간을 구현하고자 했다. 여백에서 느껴지는 단순미와 먹과 붓의 강렬한 움직임을 함축하고 있는 서세옥 화백의 수묵화, 서도호 작가가 아버님의 작품 세계를 새롭게 그리며 만든 영상과 그 공간 속의 관객들이 함께 교감하며 그들만의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보다 절제된 공간이자, 겹겹이 보이는 작품들의 세계를 느낄 수 있는 공간 구성을 하였다.
이러한 공간 콘셉트를 바탕으로 전시장 전체를 크게 두 구역으로 나눠 구성했다. 77인치 LG 투명 OLED TV와 LG OLED evo G4를 활용하여 전시하는 공간, 그리고 55인치 LG OLED 사이니지를 설치해 영상을 상영하는 공간이다. 우선 전시장 입구에는 가로 7미터, 높이 3.5m 규모의 대형 투명 패브릭에 서세옥 화백의 작품이 인쇄되어 펼쳐진다.
그 뒤로 보이는 LG전자의 투명 OLED TV와 중간 벽면에 설치된 OLED TV에서는 서도호 작가가 재해석한 서세옥 화백의 작품을 영상으로 만날 수 있다. 8대의 77인치 LG 투명 OLED TV 스크린을 통해 송출되는 영상은 뒤쪽 벽면에 설치된 8대의 77인치 LG OLED evo G4 스크린에서 나오는 또 다른 영상과 겹쳐서 보이기도 한다.
천 그림을 제작하시던 아버님의 실사 영상과 다양한 주제의 애니메이션이 LG전자 투명 OLED TV의 ‘투명 모드’와 ‘블랙 스크린 모드’를 오가며 상영되는데, 그 과정에서 서세옥 화백의 작업 모습, 예술 철학, 우리 형제가 재해석한 작품 세계가 중첩된다. 전시장 입구의 투명 패브릭을 통해 서세옥 화백의 작품 세계로 진입했듯이 ‘투명함’이라는 OLED의 특수한 특성을 투과해 서세옥 화백의 그림과 서도호 작가의 새로운 영상이 조우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24대의 LG OLED 사이니지를 벽면에 설치한 공간에서는 아버님의 육성과 작업 모습을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 <무극(無極)>이 관객들과 만난다. 이 모두를 하나로 묶어주는 전체 공간 안에서는 영상 외에 서세옥 화백의 원작 회화 7점도 감상할 수 있다.